엑셀은 내 친구 - QA와 스프레드시트의 떨어질 수 없는 관계
- 05 Jan, 2026
아침부터 엑셀
출근하면 가장 먼저 여는 건 엑셀이다. Jira보다 먼저다.
어제 테스트하다 말았던 시트를 연다. 초록색 셀은 Pass, 빨간색 셀은 Fail, 노란색은 Pending. 한눈에 들어온다.
리드가 물어본다. “어제까지 진행률이요?” 엑셀 하단에 자동 계산해둔 셀을 본다. “78.3%요.” 3초 만에 답한다.
Jira에서는 이 답을 3분 안에 못 구한다.

TestRail은 좋은데
우리 회사도 TestRail 쓴다. 연간 라이선스 수백만 원짜리다.
근데 실제로는.
TestRail에는 정식 테스트 케이스만 올린다. 문서화된 것. 검증된 것. 배포 전 최종 확인용.
진짜 테스트는 엑셀에서 한다.
탐색적 테스트하면서 발견한 것들. “이거 확인해봐야겠다” 싶은 것들. 임시로 추가한 체크리스트. 빌드별로 달라지는 테스트 범위.
이런 건 TestRail에 올리기 애매하다. 정식 케이스도 아니고. 매번 바뀌는데 거기 다 넣으면 관리가 안 된다.
결국 엑셀이다.
팀장님도 알고 계신다. “TestRail은 형식이고, 엑셀이 실전이지.” 그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엑셀로 관리하는 것들
1. 일일 테스트 체크리스트
매일 아침 만든다. 오늘 테스트할 기능 리스트. 우선순위 표시. 예상 소요시간. 실제 소요시간. 차이 기록.
이거 쌓이면 나중에 일정 산정할 때 근거가 된다. “로그인 기능 테스트는 보통 2시간 걸립니다.” 데이터로 말한다.
2. 버그 트래킹 보조 시트
Jira에 버그는 다 올린다. 당연히.
근데 내 시트에는 더 많은 정보가 있다. 재현율. 특정 디바이스에서만 나오는지. 개발자 반응. 픽스 예상일. 내 체감 심각도.
Jira는 공식 기록. 엑셀은 내 전투 일지다.
3. 디바이스별 테스트 현황
iPhone 12, 13, 14. Galaxy S21, S22, S23. 각 OS 버전별.
어떤 디바이스로 어떤 기능을 언제 테스트했는지. 이번 빌드에서 어떤 디바이스가 아직 안 됐는지.
시각적으로 표시한다. 색깔로. 조건부 서식으로.
개발자가 “그거 테스트했어요?” 물으면 바로 확인 가능하다. “iPhone 13에서 어제 했고, Galaxy는 오늘 오후 예정입니다.”
4. 빌드 히스토리
빌드 번호. 날짜. 주요 변경사항. 발견한 버그 개수. 심각한 버그 여부. 배포 여부.
나중에 “이 버그 언제부터 있었죠?” 물으면 이거 보고 답한다. “빌드 234부터요. 9월 15일자.”
5. 배포 체크리스트
배포 전날 밤. 이걸 보면서 최종 확인한다.
필수 시나리오 50개. 하나씩 체크. Pass 확인. 스크린샷 첨부 경로 기록.
이거 없으면 불안해서 못 잔다.

왜 자동화 못 하냐고요
이번 주 회의에서 나왔다.
“QA도 자동화 전환해야죠. 엑셀로 언제까지 하시게요?”
말은 맞다. 나도 안다.
근데 현실은.
시간이 없다.
당장 다음 주 배포인데 자동화 스크립트 짤 시간이 어딨나. 매뉴얼 테스트도 빠듯하다.
“자동화 공부할 시간 드릴게요.” 일주일에 2시간 준다. 2시간으로 뭘 하나.
변경이 너무 잦다.
이번 주 스펙 바뀐 게 세 번이다. UI도 계속 바뀐다.
자동화 스크립트 짜놓으면 다음 주에 못 쓴다. Selector가 바뀌어서. 플로우가 바뀌어서.
유지보수하는 시간이 처음 짜는 시간보다 더 든다.
모든 걸 자동화할 순 없다.
UI 깨짐. 미묘한 애니메이션 버그. 특정 상황에서만 나오는 크래시.
이런 건 사람 눈으로 봐야 한다. 탐색적 테스트가 필요하다.
자동화는 정형화된 시나리오만 된다. 우리 앱에서 그런 게 30%밖에 안 된다.
인프라가 없다.
자동화 서버. CI/CD 파이프라인. 디바이스 팜.
이런 거 구축하려면 돈이 든다. 시간도 든다.
팀장님이 위에 보고하셨다. 거절당했다. “매출 늘어나면 검토하죠.”
결국 엑셀로 돌아온다.
엑셀이 나쁜 건 아니다
개발자들은 엑셀 쓰는 걸 구식이라고 한다.
“요즘 누가 엑셀로 테스트 관리해요?”
근데 나는 생각한다. 엑셀이 나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런 거다.
엑셀의 장점이 있다.
빠르다.
새 시트 만드는 데 10초. 템플릿 복사해서 쓰면 5초.
Jira에서 새 대시보드 만들려면 설정에서 필드 추가하고 필터 설정하고 권한 확인하고. 20분 걸린다.
유연하다.
필요한 컬럼 바로 추가한다. 수식 넣는다. 차트 만든다. 내 맘대로.
전문 툴은 정해진 틀이 있다. 커스터마이징에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된다.
지하철에서도 본다. 회의실에서 인터넷 안 될 때도 쓴다.
클라우드 툴은 인터넷 끊기면 끝이다.
엑셀 다루는 건 모두가 안다.
신입이 와도 설명 안 해도 된다. 컬러 코딩 보여주면 바로 안다.
전문 툴은 온보딩에 일주일 걸린다.
물론 한계는 있다. 협업에 약하다. 버전 관리가 애매하다. 실시간 동기화 안 된다.
그래도 지금 우리 환경에서는 엑셀이 최선이다.
엑셀 장인의 길
4년 하다 보니 나만의 템플릿이 생겼다.
조건부 서식 활용
Pass는 초록, Fail은 빨강, Pending은 노랑. 자동으로 색 바뀌게.
마감일 지난 건 진한 빨강. 오늘이 마감인 건 주황.
숫자만 봐도 상황 파악된다.
피벗 테이블
디바이스별 버그 개수. 기능별 테스트 진행률. 주차별 테스트 커버리지.
데이터 쌓아놓고 피벗 테이블 돌리면 리포트 끝이다.
주간 회의 자료 만드는 데 10분이면 된다.
수식 자동화
VLOOKUP으로 버그 ID 넣으면 상태 자동으로 가져온다.
COUNTIF로 Pass/Fail 개수 자동 집계.
TODAY()로 오늘 날짜 기준 남은 날 자동 계산.
수동으로 하던 걸 수식으로 바꿨다. 실수도 줄고 시간도 줄었다.
매크로
반복 작업은 매크로로 만들었다.
“새 테스트 시트 만들기” 버튼 하나로 템플릿 복사, 날짜 입력, 시트 이름 변경까지 자동.
3분 걸리던 게 3초 된다.
VBA 공부한 건 아니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조금 수정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엑셀과 툴의 공존
요즘 내 업무 플로우는 이렇다.
1단계: 엑셀로 계획
이번 주 테스트 범위. 우선순위. 일정. 다 엑셀에 정리.
빠르게 초안 만든다. 수정도 빠르다.
2단계: 툴로 공식화
정해진 것만 TestRail에 올린다. Jira에 티켓 만든다.
공식 기록용이다. 팀 전체가 보는 것.
3단계: 엑셀로 실행
실제 테스트할 때는 내 엑셀 시트 본다.
더 디테일하다. 더 빠르다. 내 손에 익었다.
4단계: 툴로 보고
결과는 다시 툴에 입력한다.
Jira 버그 상태 업데이트. TestRail 테스트 결과 입력.
이건 해야 한다. 공식 프로세스니까.
5단계: 엑셀로 분석
주말에 데이터 정리한다. 트렌드 본다. 다음 주 계획 세운다.
엑셀이 가장 편하다.
이중 작업 같지만 각각 목적이 다르다.
툴은 협업과 기록용. 엑셀은 실무와 분석용.
둘 다 필요하다.
주변의 시선
다른 팀 사람들은 모른다.
“아직도 엑셀 쓰세요? 우리는 다 Notion으로 옮겼는데.”
Notion도 써봤다. 예쁘다. 세련됐다.
근데 테이블 편집이 불편하다. 수식이 제한적이다. 로딩이 느리다.
결국 엑셀로 돌아왔다.
개발자들도 가끔 비웃는다.
“QA는 엑셀만 보네요.”
내가 답한다. “네, 엑셀로 당신 버그 트래킹하고 있어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이다.
신입 때는 부끄러웠다. 남들 다 멋진 툴 쓰는데 나만 엑셀이라고.
지금은 신경 안 쓴다. 결과가 중요하지 수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제시간에 정확하게 테스트하고, 버그 잘 찾아내고, 리포트 빠르게 만들면 된다.
그게 엑셀로 되면 엑셀 쓰는 거다.
미래는 어떨까
솔직히 모르겠다.
5년 후에도 엑셀 쓰고 있을까.
자동화 비중이 늘어나면 엑셀 쓸 일이 줄긴 할 것이다.
AI가 테스트하는 시대가 오면 내 엑셀도 쓸모없어질지 모른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엑셀이 내 무기다. 내 작업 속도를 2배로 만들어주는 도구다.
동료가 물어봤다. “엑셀 장인 되는 게 목표예요?”
아니다.
좋은 QA가 되는 게 목표다.
엑셀은 수단일 뿐이다. 근데 지금은 최고의 수단이다.
나중에 더 좋은 게 나오면 그걸 쓸 것이다. 도구에 집착하진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엑셀만큼 내 일을 잘 이해해주는 툴은 없다.
오늘도 엑셀을 연다
퇴근 30분 전이다.
내일 테스트 시트를 만든다. 템플릿 복사. 날짜 입력. 테스트 항목 정리.
5분이면 끝난다.
팀장님이 지나가면서 본다. “또 엑셀이네요.”
“네, 제일 편해서요.”
“그래도 자동화는 공부해야죠.”
“네, 주말에 강의 들을 거예요.”
진짜 들을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또 미룰 것이다.
당장 다음 주 배포가 급하다.
엑셀 파일을 저장한다. 백업도 한다.
4년 치 데이터가 여기 있다. 내 QA 커리어가 여기 있다.
누가 뭐래도 이건 내 자산이다.
PC를 끈다. 가방을 챙긴다.
내일 아침, 가장 먼저 열 파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역시 엑셀이다.
엑셀 없으면 일 못 한다. 그게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