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를 발견했을 때의 그 느낌 - 쾌감인가, 불안감인가?
- 09 Dec, 2025
오늘도 버그 하나
오전 10시. 새 빌드 테스트 중이다. 로그인 플로우 확인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SNS 로그인 후 프로필 사진 안 뜬다. 와이파이에선 되는데 LTE에선 안 된다.
가슴이 뛴다. 이거다. 버그다. 재현 한 번 더. 또 된다. 타이밍 문제는 아닌 거 같다.
Charles Proxy 켜서 트래픽 캡처. API 타임아웃 3초인데 이미지 서버 응답이 4초. LTE는 느려서 걸리는 거다.
찾았다.
Jira 켜고 이슈 작성 시작. 재현 스텝, 예상 결과, 실제 결과. 스크린샷 3장, 로그 파일, 네트워크 캡처. 우선순위 Medium. 심하면 High인데 일단은.
등록 버튼 누르는 순간. 묘한 쾌감이 온다.

이상한 기분
버그 찾으면 기분이 좋다. 이게 정상인가 싶다.
회사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사용자가 불편하다는 건데. 개발자가 고쳐야 한다는 건데.
나는 기분이 좋다.
개발자한테 멘션 날렸다. “민호님, 이거 확인 부탁드려요.” 10분 뒤 답장 온다. “아 이거 제가 놓쳤네요. 고맙습니다.”
고맙다고? 내가 고맙다.
점심 먹으러 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버그 찾으면 좋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여자친구한테 물어봤다. “환자 증상 정확히 찾아내면 기분 어때?” “당연히 좋지. 그래야 치료하잖아.”
맞다. 그거다.

직업병이라는 거
주말에 배달 앱 쓰다가 버그 발견했다. 주소 입력란에 특수문자 넣으니까 앱이 뻗었다. ”#” 하나 넣었을 뿐인데.
여자친구가 웃었다. “너 진짜 직업병이다.” “이거 제보해야 하나?” “그냥 밥이나 먹어.”
맞다. 직업병이다.
은행 앱도 그렇다. 뒤로가기 연타하면 이상한 화면 나온다. 게임도 그렇다. 엣지 케이스만 자꾸 시도한다.
정상적으로 쓰는 게 없다. 항상 꼬아서 본다. “이러면 어떻게 되지?” “여기서 저기로 바로 가면?”
버그 나오면 또 기분 좋다. “역시.” “이건 놓쳤을 거야.”
그런데 이게. 내 일이다.

쾌감의 정체
왜 기분이 좋을까. 며칠 생각해봤다.
첫째, 내가 잘했다는 거. 버그 찾는 게 내 일이다. 못 찾으면 못하는 거다. 찾으면 잘하는 거다.
둘째, 사용자를 보호한 거. 내가 못 찾으면 사용자가 겪는다. 리뷰에 “버그 많아요” 뜬다. 평점 떨어진다. 내가 먼저 찾으면 막을 수 있다.
셋째, 제품이 좋아지는 거. 버그 하나 고칠 때마다. 앱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다음 빌드는 더 나아진다.
넷째, 인정받는 거. “QA가 잘 잡아줘서 다행이에요.” 이 말 들을 때. 내 일이 의미 있다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버그 찾으면 기분 좋은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의사가 병 진단하면 기분 좋은 거랑 같다. 정비사가 고장 찾으면 기분 좋은 거랑 같다.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불안감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불안하기도 하다.
버그 찾으면 기분 좋은데. 못 찾으면 불안하다.
테스트 끝내고 리포트 쓸 때. “발견된 이슈 없음” 이렇게 쓰면.
진짜 없는 건가? 내가 못 찾은 건가?
배포 후가 제일 무섭다. CS 문의 들어올까 봐. “이런 버그 있어요.” “QA는 뭐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놓친 거다. 내 책임이다.
작년에 있었다. 결제 페이지 버그. 특정 카드사에서만 오류 나는 거. 나는 다른 카드로만 테스트했다.
배포 후 문의 폭주. 핫픽스 긴급 배포. 팀장이 불렀다.
“이거 왜 못 잡았어?” “테스트 케이스에 없었습니다.” “그럼 만들었어야지.”
맞는 말이다. 그날 밤 잠 못 잤다.
그래서 이제는. 버그 못 찾으면 더 불안하다. 찾으면 안심이다.
쾌감이면서. 동시에 안도감이다.
숫자로 보는 것
이번 달 통계 봤다. 내가 등록한 이슈 67건. 개발자가 수정한 거 58건. Invalid 처리 9건.
87% 정확도. 나쁘지 않다.
근데 놓친 게 몇 개일까. 배포 후 발견된 거 이번 달 3건. 내가 못 잡은 거다.
완벽할 순 없다. 알고 있다.
그래도 찝찝하다.
시니어 QA가 말했다. “버그 제로는 불가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리스크 최소화.” “Critical 잡고, Major 잡고.” “Minor는 우선순위에 따라.”
맞다. 그래도 다 잡고 싶다.
욕심일까. 직업 의식일까.
둘 다인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은
QA 커뮤니티에 물어봤다. “버그 찾으면 기분 어때요?”
답글 20개 넘게 달렸다.
“저도 기분 좋아요. 이상한가 했는데.” “보물찾기 같은 느낌?” “개발자한테 미안하면서도 뿌듯해요.” “못 찾으면 밤에 생각나요.”
다들 비슷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썼다. “우리는 문제를 찾는 게 아니라.” “해결의 시작점을 만드는 거예요.”
와. 이 표현 좋다.
버그 찾는 게 끝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고치는 게 시작이다.
내가 안 찾으면. 아무도 모른다. 고칠 수도 없다.
내가 찾으면. 개발자가 고친다. 제품이 좋아진다. 사용자가 만족한다.
이 과정의 시작. 그게 내 역할이다.
그러니까. 기분 좋은 게 당연하다.
개발자와의 관계
가끔 개발자가 짜증 낸다. “또요? 이거 스펙이에요.” “우선순위 낮은 거 아니에요?”
이해한다. 자기가 만든 걸 지적받는 거. 기분 안 좋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할 말 한다. “스펙 문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상해요.”
대부분은 인정한다. “아 맞네요. 고칠게요.” “좋은 지적이에요.”
친한 개발자는 이렇게 말했다. “민수 씨가 잡아줘서 다행이에요.” “배포 전에 발견되는 게 최고죠.”
맞다. 개발 중에 잡히는 게 제일 싸다. 배포 후는 비용이 10배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같은 팀이다. 목표는 하나. 좋은 제품 만들기.
내가 버그 찾는 건. 개발자 괴롭히려는 게 아니다. 같이 더 나은 걸 만들자는 거다.
그걸 아는 개발자랑은. 일하기 편하다.
모르는 사람이랑은. 힘들다.
성장의 증거
예전엔 못 찾던 거. 이제는 찾는다.
타이밍 이슈. 메모리 릭. 네트워크 오류 핸들링. 엣지 케이스.
경험이 쌓이면서. 보이는 게 많아진다.
2년 차 때는. 화면만 봤다. “버튼 안 눌려요.” “화면 깨져요.”
4년 차 지금은. 로그도 본다. 네트워크도 본다. 디바이스 스펙도 고려한다.
“이 디바이스에서만 느린 이유가.” “API 응답이 늦어서.” “이미지 최적화 안 돼서.”
원인까지 추정한다.
개발자가 놀란다. “어떻게 알았어요?” “로그 보면 나와요.”
이럴 때. 내가 성장했다고 느낀다.
버그 찾는 게. 단순히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걸.
그래서 더 기분 좋다.
자동화와의 줄다리기
요즘 고민이다. 자동화 배워야 한다.
회사에서도 압박 온다. “수동 테스트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자동화 스크립트 작성해보세요.”
알고 있다. 시간이 없다.
매일 새 빌드 나온다. 테스트해야 할 케이스는 늘어난다. 리그레션만 해도 하루 종일이다.
자동화 배우는 건 야근 끝나고. 밤 11시부터.
Appium 튜토리얼 보다가. 졸아서 포기.
주말에 스터디 가서. Python 기초부터.
배우는 건 재밌다. 스크립트 돌아가면 신기하다.
근데 두렵기도 하다. 자동화가 완성되면. 내 역할은 뭐가 되나.
시니어가 말했다. “자동화는 도구일 뿐이야.” “사람이 생각하는 걸 대신 못 해.” “엣지 케이스는 여전히 사람이 찾아.”
맞는 말이다. 그래도 불안하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 안 배우면 도태된다.
사용자를 만났을 때
작년에 사용자 인터뷰 참관했다. 5명 모셔서 앱 써보게 하는 거.
한 분이 말했다. “이 앱 진짜 안정적이에요.” “다른 앱은 자꾸 꺼지는데.” “이건 그런 거 없어요.”
그 순간. 심장이 뛰었다.
내가 한 거다. 크래시 나는 거 다 잡았다. 배포 전에 다 테스트했다.
말은 안 했다. “저희 QA가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순 없다.
그냥 속으로만. 뿌듯했다.
다른 분은 이렇게 말했다. “버튼 위치가 좋아요.” “누르기 편해요.”
이것도. 내가 피드백 준 거다. “여기는 엄지 안 닿아요.” “버튼 위치 조정 필요해요.”
개발자가 수정했다.
사용자는 모른다. 그 과정을. 내 역할을.
그래도 괜찮다. 좋은 경험 주는 게 목표니까.
그게 내 일이니까.
앞으로도
버그는 계속 나올 거다. 완벽한 소프트웨어는 없다.
나는 계속 찾을 거다. 그게 내 일이니까.
찾으면 기분 좋을 거다. 이상한 게 아니라. 정상인 거다.
못 찾으면 불안할 거다. 그것도 정상이다. 책임감의 증거니까.
개발자랑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할 거다. 같은 목표 향해 가는 거니까.
자동화도 배울 거다. 천천히라도.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모를 거다. 내가 뭘 했는지. 몇 개를 막았는지.
그래도 괜찮다.
앱이 잘 돌아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버그 찾는 쾌감. 그건 내 직업의 보상이다. 잘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상하지 않다. 자연스럽다.
QA민수의 일상이다.
오늘도 버그 3개 잡았다. 내일은 몇 개 나올까.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