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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개를
- 06 Dec, 2025
테스트 케이스 3000개를 쓰고 나서 깨달은 것
3000개 테스트 케이스 3000개를 썼다. 정확히는 3247개다. TestRail에 다 기록돼 있다. 4년 동안 쌓인 숫자다. 처음엔 뿌듯했다. 지금은 그냥 숫자다. 어제도 케이스 20개 추가했다. 결제 플로우 개편이래서. 오늘도 15개 더 써야 한다.반복의 늪 로그인 테스트 케이스만 80개다. 회원가입은 65개. 결제는 120개. 매번 비슷하다. 정상 케이스, 에러 케이스, 엣지 케이스. 이메일 형식 체크, 비밀번호 자릿수, 특수문자 입력. 복붙하고 수정한다. 또 복붙하고 수정한다. 이게 내 일의 70%다. 신규 기능 나올 때마다 똑같은 패턴. "이 필드는 필수인가요?" "최대 입력 길이는요?" "서버 에러 나면 어떻게 되나요?" 물어보고, 케이스 쓰고, 실행하고, 버그 등록. 다음 기능 나오면 또.자동화라는 단어 팀장이 말했다. "자동화 좀 해봐." 알고 있다. Selenium, Appium, Cypress. 이름은 다 안다. 유튜브에 강의도 봤다. "Hello World" 찍는 데까지 해봤다. 그다음이 문제다. 퇴근하면 9시다. 집 가면 10시. 씻고 밥 먹으면 11시. 공부 시작하면 12시. 한 시간 보면 1시. 내일 9시 출근이다. 주말? 토요일은 빨래하고 청소하고 여자친구 만난다. 일요일은 부모님 전화하고 밀린 드라마 본다. 그러다 월요일. 테스트 케이스 30개 써야 한다는 메시지. 자동화는 다음 주로.시간이 없다는 변명 동료 하나가 자동화로 넘어갔다. 6개월 공부했다고. 연봉 800만원 올랐다. 부럽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6개월이 없다. 배포 주기가 2주다. 2주마다 리그레션 테스트. 핵심 케이스만 500개. 하루 8시간 테스트해도 모자란다. 야근하면 끝낸다. 공부할 시간은 어디서 나오나. 팀장은 말한다. "업무 시간에 조금씩 해." 조금씩? 오전엔 버그 재현. 오후엔 개발자 미팅. 저녁엔 빌드 테스트. 점심시간에 하라는 건가. 딜레마 자동화 안 배우면 도태된다. 알고 있다. 채용 공고 보면 다 Selenium 우대다. 근데 지금 당장은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번 주 배포 앞뒀다. 누가 테스트하나. 자동화 공부하면 당장 일이 밀린다. 일 하면 공부할 시간 없다. 뫼비우스의 띠다. 유튜브에 'QA 자동화 전환' 검색했다. 다들 말한다. "퇴근 후 3개월만 투자하세요." 3개월. 90일. 하루 2시간이면 180시간. 해봤다. 3일 하고 포기했다. 배포 주간이었다. 3000개의 무게 3247개 테스트 케이스. 내 4년이다. 무게가 느껴진다. 이거 다 의미 있나? 80% 통과. 10% 페일. 10% 블락. 매번 비슷한 비율. 매번 비슷한 버그. Null 체크 안 함, 엣지 케이스 미처리. 이걸 자동화하면? 3시간이면 끝날 걸 3일 한다. 근데 자동화 스크립트 짜는 데 일주일 걸린다. 그럼 언제 본전이냐. 계산해봤다. 10번 돌려야 본전. 우리 앱은 2주마다 배포. 5개월 후 본전. 그때까지 스크립트 유지보수는? 현실 어제 신입이 들어왔다. 25살. 컴공 출신. "Python 할 줄 아세요?" 물어봤다. "네, 학교에서 배웠어요." 부럽다. 나는 독학이다. 유튜브랑 구글이 선생님. 신입한테 테스트 케이스 작성법 알려줬다. "이렇게 스텝 쪼개고요." "예상 결과는 이렇게 쓰고요." 설명하면서 생각했다. 이거 언제까지 하나. 30살 넘어서도 이거 하나. 점심 먹으면서 신입이 물었다. "자동화는 언제 배워요?" "나도 배우는 중이야." 거짓말이다. 배우는 중이 아니다. 배워야지 하는 중이다. 깨달은 것 3000개 쓰고 나니 안다. 양으로는 안 된다는 걸. 테스트 케이스 1만 개 써도 자동화 모르면 그냥 매뉴얼 QA다. 연봉 협상할 때 팀장이 말했다. "올해는 7% 인상입니다." "자동화 역량 키우시면 내년엔 더 드릴게요." 당근이다. 근데 당근 먹을 시간이 없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한다. 내년에도 똑같을 거다. "내년엔 더 드릴게요." 악순환 매뉴얼 테스트가 많으니 바쁘다. 바쁘니 공부 못 한다. 공부 못 하니 자동화 못 한다. 자동화 못 하니 매뉴얼이 늘어난다.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인다. 커뮤니티에 물어봤다. "다들 어떻게 시간 내세요?" 답변들. "새벽에 일어나서 2시간." "주말에 8시간." "회사 그만두고 부트캠프." 새벽? 나는 12시에 잔다. 6시에 일어난다. 이미 수면 부족이다. 주말 8시간? 여자친구가 화낸다. "또 공부해?" 회사 그만두고? 월급 없으면 월세 못 낸다. 타협 결론 냈다. 완벽하게 전환은 무리다. 조금씩 섞어가자. 이번 주부터 시작했다. 하루 30분. 점심 먹고 30분. Selenium 기초 강의 듣는다. 한 강의가 20분이다. 10분은 따라 쳐본다. 일주일에 2.5시간. 한 달이면 10시간. 6개월이면 60시간. 적다. 그래도 0보단 낫다. 어제 첫 스크립트 짰다. 로그인 자동화. ID 입력, PW 입력, 로그인 버튼 클릭. 10줄짜리 코드. 돌려봤다. 됐다. 신기했다. 내가 짠 코드가 앱을 조작한다. 4년 만에 처음 느끼는 감정. 3000개의 의미 3247개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이게 있어서 앱이 돌아간다. 이게 있어서 버그를 잡는다. 근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3000개는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이 케이스들을 자동화하는 게 다음 단계. 느려도 간다. 하루 30분씩. 동료가 물었다. "자동화 언제 마스터해?" "모르겠어. 1년? 2년?" 중요한 건 시작했다는 것. 어제보다 오늘 10줄 더 안다. 내일은 20줄 알 것이다. 솔직한 고백 겁난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신입들은 이미 Python 안다. 나는 4년 차인데 이제 시작. 늦은 건 아닐까. 커뮤니티에서 봤다. "30살에 개발 시작해서 시니어 됐어요." 위로가 된다. 동시에 압박이다. 나도 해야 한다. 매일 밤 생각한다. 오늘도 공부 못 했다고. 내일은 꼭 하겠다고. 내일 되면 또 핑계. "오늘 배포라서." "내일부터 시작." 이제 그만하려고. 핑계 대지 말자. 하루 30분, 무조건.3247개 테스트 케이스. 이제 3248번째는 자동화 스크립트다. 느리지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