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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 03 Dec, 2025
야근 수당보다 소중한 것 - QA의 자존감 찾기
연봉 명세서를 펼친 밤연봉 협상 메일을 받았다. 4200만원에서 4500만원. 300만원 올랐다. 월 25만원. 기뻐야 하나. 같은 날 입사한 개발자 친구는 5800만원이 됐다고 한다. 작년에 이미 5500만원이었다. 나랑 똑같이 4년 차다. 대학도 같이 나왔다. "너도 개발 배워. QA는 한계 있어." 친구는 악의 없이 말했다. 근데 그게 더 아프다. 야근 수당 포함하면 4700만원 정도 된다. 배포 전날은 거의 매번 새벽까지다. 수당이 없으면 난 뭐지. 개발자는 야근 안 해도 기본이 높다. QA는 야근해야 겨우 따라간다. 이게 맞나. 회의실의 온도차오늘 연봉 협상 미팅이었다. 팀장님이 말했다. "민수씨 열심히 하는 거 안다. 근데 QA 시장 단가가 그래." 시장 단가. 이 말을 세 번째 듣는다. "개발은 구하기 어렵잖아. 경쟁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럼 QA는 쉽게 구하냐.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테스트 케이스 짜고, 엣지 케이스 찾고, 재현 스텝 정리하고, 개발자 설득하고. 이게 아무나 하는 일이냐. "자동화 배우면 연봉 더 올릴 수 있어." 자동화. 맨날 듣는다. 근데 언제 배우라는 거지. 매일 야근하는데. 주말에 공부하라는 건가. 개발자는 회사에서 React 새 버전 배우면 업무 시간에 한다. QA는 Selenium 배우려면 개인 시간 써야 한다. 이것도 시장 단가냐. 팀장님은 좋은 분이다. 근데 설득이 안 된다. "다른 회사도 비슷할 거야." 알아봤다. 맞다. 다 비슷하다. 그래서 더 화난다. 버그 900개의 가치 지난 1년간 내가 등록한 버그는 917개다. Jira에 다 있다. Critical 52개, Major 284개, Minor 581개. Critical 버그 중 28개는 배포 전에 발견했다. 출시됐으면 서비스 터졌을 것들이다. 로그인 무한 루프, 결제 금액 오표시, 푸시 중복 발송, 개인정보 노출 취약점. 이거 하나만 나가도 회사 망한다. 뉴스 나온다. 주가 떨어진다. 근데 내 연봉엔 안 보인다. 개발자는 "이 기능 제가 만들었어요" 할 수 있다. 눈에 보인다. QA는? "이 버그 제가 찾았어요" 말하면 "그게 네 일이잖아" 돌아온다. 맞다. 내 일이다. 근데 왜 개발자 일은 대단하고 내 일은 당연한 건데. 기능 하나 추가하는 것보다 서비스 안 터지게 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퇴근길의 자문자답9시에 퇴근했다. 배포 일주일 전이라 요즘 이렇다.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나 왜 이 일 하지. 돈? 아니다. 개발 배우면 더 번다. 적성? 글쎄. 테스트는 좋은데 인정은 별로다. 그럼 뭐지. 홍대입구역에서 한 할머니가 스마트폰 보고 계셨다. 우리 회사 앱이다. 결제하시다가 멈추셨다. 네트워크 끊겼나 보다. 근데 3초 후에 다시 진행됐다. 그거 내가 찾은 버그다. 2주 전에. "네트워크 끊기면 무한 로딩 도는데요. 타임아웃 처리 필요합니다." 개발자는 귀찮아했다. "확률 낮은데 꼭 해야 해요?"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쓸 수도 있잖아요." 결국 고쳤다. 지금 할머니가 불편 없이 쓰신다. 그게 내 일이다. 연봉 명세서엔 안 나온다. 근데 가치는 있다. 개발자와의 대화 사무실로 돌아왔다. 핫픽스 확인 요청이 왔다. 개발자 성진이가 물었다. "민수야, 너 이직 생각 없어?" "왜?" "QA는 연봉 한계 있잖아. 개발 배워." 웃었다. 오늘만 몇 번째 듣는 소린지. "나도 알아. 근데 나는 개발보다 이게 맞는 것 같아." "그래도 돈은 중요하잖아." 맞다. 중요하다. 여자친구랑 결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근데 성진이한테 말했다. "너 지난주에 만든 기능 있잖아. 가입 플로우." "응." "내가 테스트하면서 17개 버그 찾았어. 그 중에 회원가입 안 되는 거 3개." "...그랬지." "그거 내가 안 찾았으면 출시됐어. 신규 가입 0명이었겠지." "고마워." "난 그게 좋아. 너희가 만든 거 완성시키는 거." 성진이가 웃었다. "그래도 연봉은 나보다 적잖아." "알어. 근데 니가 내 돈 벌어다 줄 거 아니잖아." 둘이 웃었다. 근데 진짜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자존감의 정의 밤 11시. 핫픽스 확인 끝났다. 테스트 리포트 작성한다. "총 23개 테스트 케이스, 모두 Pass. 배포 가능." 이 한 줄을 쓰기 위해 3시간 테스트했다. 개발자들은 이 메시지 보고 안심하고 배포한다. 내가 확인했으니까. 그 믿음이 내 가치다. 연봉 명세서에는 안 나온다. 근데 없으면 안 된다. 작년에 신입 QA가 왔었다. 2개월 만에 관뒀다. "버그 찾아도 인정 안 해주고, 개발자들이 무시하고, 연봉도 낮고. 뭐 하러 이 일 해요?" 이해한다. 나도 맨날 생각한다. 근데 안 그만둔다. 왜냐면 알기 때문이다. 서비스 품질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이 나라는 걸. 개발자가 놓친 버그를 찾는 사람이 나라는 걸. 사용자가 불편 없이 쓸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그게 내 자존감이다. 야근 수당의 의미 야근 수당 들어온다. 이번 달 110만원. 배포 3번 있었다. 새벽까지 3번 남았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얼마 안 된다. 근데 이게 있어서 연봉이 개발자를 조금이라도 따라간다. 슬픈 일이다. 친구가 말했다. "야근 수당으로 연봉 메꾸는 거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QA 시장 단가. 개발자보다 낮은 대우.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인식. 다 알고 있다. 그래도 계속한다. 왜냐면 야근 수당보다 소중한 게 있으니까. 배포 후에 모니터링하는 30분. 심장 쫄깃하다. 버그 없이 지나가면 안도한다. "이번에도 잘 넘어갔네." 그 안도감. 그게 내 보상이다. 돈으로 환산 안 된다. 근데 가치 있다. 여자친구가 물었다. "개발자가 돈 더 버는데 왜 안 배워?" "나는 지키는 게 좋아. 만드는 것보다." "그게 뭔데?" "품질. 사용자 경험. 서비스 안정성." "그게 돈이 돼?" "안 돼. 근데 의미 있어." 여자친구는 이해 못 한다. 괜찮다. 나도 가끔 이해 못 한다. 내일의 선택 내일도 출근한다. 9시. 어제 올라온 빌드 확인한다. 테스트 시작한다. 버그 찾으면 등록한다. 개발자가 "제 PC에선 안 그러는데요?" 말하면 재현해준다. 배포 일주일 전이면 야근한다. 새벽에 최종 확인한다. 연봉은 개발자보다 낮다. 야근 수당이 없으면 더 낮다. 그래도 한다. 왜? 품질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아무나 못 하니까. 내가 할 수 있으니까. 자동화 배울 거다. 연봉 더 올릴 거다. 이직도 알아볼 거다. 근데 QA는 안 그만둔다. 이게 내 일이다. 자부심 있다.야근 수당은 숫자다. 자존감은 선택이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