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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 15 Dec, 2025
한 달에 한 번 엄마한테 전화 - 일 얘기는 못 하고
한 달에 한 번 엄마한테 전화 - 일 얘기는 못 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일요일 저녁 8시. 폰을 본다. 엄마한테 전화해야 한다. 지난달 27일에 했으니까 오늘로 딱 한 달. 더 미루면 엄마가 먼저 전화한다. 그럼 마음이 더 불편하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두 번 신호음. 엄마가 받는다. "어, 민수야?" "응, 엄마." "밥은 먹었어?" 매번 같은 시작이다.일 잘 되냐는 질문 밥 먹었다고 대답한다. 김치찌개 끓여 먹었다고. 엄마가 좋아한다. 집에서 밥 해먹는다는 게. "요즘 일은 어때?" 이 질문이 온다. 매번. "응, 괜찮아." 더 할 말이 없다. 사실 지난주에 배포 전날 새벽 3시까지 일했다. 최종 빌드에서 결제 버그가 나왔다. 재현 스텝 정리하고 개발자 불러내고 핫픽스 확인하고. 집에 와서 씻지도 못하고 잤다. 그런데 엄마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 "회사에서 뭐 하는 거라고 했지? 컴퓨터로 뭐 고치는 거?" 작년에 설명했다. 올해도 설명했다. 엄마는 아직도 모른다. "앱 테스트하는 거야. 버그 찾는 거." "버그? 벌레?" "아니, 오류. 프로그램 오류." "아, 그래그래. 그거 하는구나." 이해 못 한다. 나도 안다.이해시키려고 했던 때 2년 전쯤. 명절에 대전 내려갔다. 친척들 모였다. 다들 물어본다. 뭐 하냐고. "IT 회사 다녀요. QA 엔지니어요." "오, 개발자구나!" "아니요, 테스트 하는..." "아, 그것도 개발이지 뭐." 설명했다. 개발자가 만든 앱을 테스트한다고. 버그를 찾아서 보고한다고. 품질을 책임진다고. 큰아버지가 물었다. "그럼 너는 만드는 건 아니고?" "네, 확인하는 거죠." "아... 그렇구나." 공기가 미묘하게 식었다. 사촌형이 물었다. "그거 연봉은 어때?" "4천 좀 넘어요." "오, 괜찮네." 근데 사촌형 연봉은 7천이다. 개발자다. 그날 이후로 일 얘기 자세히 안 한다. 엄마가 자랑하는 것들 엄마 친구들한테는 뭐라고 하는지 안다. "우리 아들 서울서 IT 회사 다녀." 거기까지만 한다. 구체적으로 뭐 하는지는 안 말한다. 아마 모를 거다. 한 번은 엄마가 물었다. "너 회사에서 중요한 일 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중요하다. 내가 놓친 버그가 배포되면 큰일 난다. 유저들한테 욕먹는다. 회사 이미지 망가진다. 매출 떨어진다. 근데 개발자가 안 만들면 내가 테스트할 것도 없다. 기획자가 스펙 안 주면 나는 뭘 확인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중요한가? 필요한가? "응, 중요하지." 그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만족했다.실제로 하는 일 월요일 아침. 어제 올라온 빌드 확인한다. 로그인 플로우 테스트. 회원가입 플로우 테스트. 메인 화면 로딩 체크. 이미지 깨짐 확인. 버튼 동작 확인. 텍스트 오타 확인. 오전 11시. 버그 3개 발견. Jira에 등록한다.[Critical] 결제 완료 후 화면 멈춤 [Major] 프로필 이미지 업로드 실패 [Minor] 설정 화면 레이아웃 깨짐개발자한테 슬랙 보낸다. "민호님, 결제 버그 확인 부탁드려요. 재현 스텝 Jira에 올렸습니다." 30분 뒤. 답장 온다. "제 폰에서는 안 그러는데요?" 매번 듣는 소리다. 내 폰 들고 개발자 자리로 간다. 재현한다. 1, 2, 3번 스텝. 버그 터진다. "아... 이거 iOS 14.5에서만 그러네요." "네, 그래서 디바이스 정보 적어뒀어요." "아, 확인했습니다. 수정할게요." 돌아와서 다음 테스트한다. 이게 내 일이다. 자랑할 수 없는 순간들 개발자는 자랑한다. "이번에 신기능 개발했어요. 사용자 반응 좋아요." 기획자도 자랑한다. "이번 기획으로 전환율 20% 올랐습니다." 디자이너도 자랑한다. "리디자인 후 앱스토어 평점 올랐어요." 나는? "이번 배포에서 Critical 버그 없었습니다." 박수 없다. 버그 없는 게 당연하니까. 근데 버그 나오면 내 책임이다. "QA 뭐 했어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이제는 안 그렇다. 이게 내 일이니까. 버그 막는 게 성과다. 눈에 안 보여도. 엄마는 걱정한다 "야근 많이 해?" "아니, 괜찮아." 거짓말이다. 지난주 야근 4일. 이번 주도 배포 있으면 3일은 할 거다. "밥은 잘 먹고 다녀?" "응, 잘 먹어." 어제 편의점 도시락 먹었다. 배포 확인하면서. "여자친구는 잘 지내?" "응, 잘 지내." 지난주에 싸웠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핫픽스 때문에 취소했다. 이해해 준다고 했는데 목소리가 차가웠다. 엄마한테 이런 얘기 못 한다. 걱정할까 봐. "그래, 건강 챙겨라." "응, 엄마도." 통화 끝난다. 15분 걸렸다. 핸드폰 내려놓는다. 뭔가 허전하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QA 일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 개발자는 코드를 보여준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기획자는 기획서를 보여준다. 나는? 버그 리포트? Jira 티켓? 테스트 케이스? 엄마한테 보여줘도 이해 못 한다. "이게 뭐야?" "버그 재현 스텝이요." "...그래." 그냥 모른다. 내가 매일 뭐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힘든지. 설명해도 소용없다.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몰라. 근데 섭섭하진 않다. 이상하게. 엄마가 이해 못 하는 게 오히려 편하다. 일 얘기 안 해도 되니까. 스트레스 얘기 안 해도 되니까. "잘 지내냐?" "응, 잘 지내." 그걸로 충분하다. 실은 말하고 싶은 것들 가끔 생각한다. 엄마한테 진짜 얘기하면 어떨까. "엄마, 나 요즘 힘들어." "왜?" "배포 전에 버그 못 찾을까 봐 무서워. 배포 후에 버그 나오면 내 잘못 같아. 개발자들은 내가 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자동화 공부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경력 쌓아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QA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 들으면 화나." "연봉은 개발자보다 적어. 승진도 느려. 이 일 계속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근데 말 안 한다. 엄마가 뭐라고 할지 뻔하니까. "그럼 다른 일 알아봐." "그 일이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 "건강이 최우선이야." 틀린 말 아니다. 근데 위로가 안 된다. 엄마는 내 일을 모른다. 내 고민을 이해 못 한다. 그래서 말 안 한다. 그래도 전화하는 이유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저녁. 엄마한테 전화한다. 일 얘기는 안 한다. 밥 먹었다고만 한다. 잘 지낸다고만 한다. 15분 통화. 별 내용 없다.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엄마 목소리 들으면. "밥은 먹었어?" "건강 챙겨라." "잘 지내고 있지?" 이 말들이 좋다. 내 일을 이해 못 해도. 내 스트레스를 몰라도. 나를 걱정한다는 게 느껴진다. 그걸로 충분하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어제 엄마랑 통화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조금 낫다. 버그 찾으러 간다. 오늘도. 이해받지 못해도 QA 커뮤니티에서 봤다. "부모님이 내 일 이해 못 하는 게 서러워요." 댓글 많았다. "저도요." "우리 엄마는 제가 컴퓨터 수리하는 줄 알아요." "아빠가 개발자 아니냐고 계속 물어봐요." 다들 비슷하다. QA는 설명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만드는 게 아니고. 고치는 것도 아니고. 확인하는 거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전문적인지.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몰라. 부모님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가끔 외롭다. 근데 괜찮다. 회사에는 안다. 내가 뭐 하는지. 개발자는 안다. 내가 얼마나 꼼꼼한지. 기획자는 안다. 내가 얼마나 스펙을 파고드는지. 같은 팀 사람들은 안다. 배포 전날 내가 얼마나 긴장하는지. 그걸로 충분하다. 엄마가 이해 못 해도. 가족이 설명 못 들어도. 내 일은 의미 있다. 다음 통화까지 다음 달. 또 일요일 저녁에 전화할 거다. 엄마가 물어볼 거다. "일은 어때?" "괜찮아." 그렇게 대답할 거다. 여전히 일 얘기는 안 할 거다. 버그 얘기도. 야근 얘기도. 개발자랑 싸운 얘기도. 그냥 잘 지낸다고만 할 거다. 근데 이제 알겠다. 엄마가 내 일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내 일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안다. 이 일이 왜 중요한지. 왜 필요한지. 왜 계속하는지. 그걸로 충분하다. "민수야, 거기서 행복해?" 엄마가 가끔 물어본다. "응." 거짓말 아니다. 힘들어도. 스트레스 받아도. 인정 못 받아도. 나는 이 일이 좋다. 버그 찾을 때. 재현 스텝 정리할 때. 배포 후 모니터링할 때. 이게 내 일이다.다음 일요일에도 전화한다. 15분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