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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에게

여자친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상 - QA 엔지니어의 한숨

여자친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상 - QA 엔지니어의 한숨

여자친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상 - QA 엔지니어의 한숨 오늘 뭐 했어? 퇴근하고 여자친구 만났다. 항상 묻는 질문이 온다. "오늘 뭐 했어?" 나는 3초 멈춘다. 머릿속으로 돌아간다. 오늘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앱 빌드 20개 받았다. 테스트 케이스 147개 실행했다. 버그 8개 등록했다. 개발자랑 재현 영상 3번 주고받았다. 크래시 로그 10개 분석했다. 리그레션 테스트 2회차 돌렸다. "...일했지." 여자친구 표정이 묘해진다.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이게 문제다.설명의 늪 "앱 테스트했어." "앱 만드는 거 아니었어?" "아니, 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시작부터 꼬인다. "개발자가 만든 앱을 내가 확인하는 거야." "확인?" "버그 찾는 거지." "버그가 뭔데?" 숨을 크게 들이쉰다. "프로그램이 잘못 작동하는 거." "그럼 개발자가 잘못 만든 거네?" "...뭐 그렇게 볼 수도." "그럼 개발자가 고치면 되는 거 아냐?" 맞다. 논리적으로 맞다. 근데 내 직업을 부정당한 기분이다. "버그를 먼저 찾아야 고치지." "개발자가 자기가 만든 건 자기가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니야?" 5초 침묵. 이 대화를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다.간호사는 다르다 여자친구는 간호사다. 그녀가 오늘 한 일을 말할 때는 다르다. "오늘 응급실 진짜 바빴어. 환자 10명 왔는데 2명은 중증이었어."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된다. "링거 꽂고, 활력징후 체크하고, 의사 선생님한테 보고하고..." 구체적이다. 명확하다. "한 환자분이 고마워요 하시는데 진짜 보람찼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내 차례가 온다. "나도 오늘 바빴어. 빌드 20개 받았거든." "빌드가 뭐야?" "...개발자가 만든 프로그램?" "하루에 20개를 만들어?" 설명이 길어진다. 빌드는 버전이고, 수정할 때마다 올라오고, 내가 확인해야 하고... 여자친구 눈빛이 흐려진다. "아 그래. 힘들었겠다." 공감이 아니다. 이해 포기의 눈빛이다. 버그 설명의 한계 어제 찾은 버그가 재밌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제 대박 버그 찾았어." 여자친구가 관심을 보인다. "어떤 거?" "로그인하고 프로필 들어가서 설정 누르고 알림 켜면 앱이 죽어." "...죽어?" "크래시. 꺼지는 거." "그럼 그냥 안 켜면 되는 거 아냐?" 논리적이다. 하지만 포인트를 놓쳤다. "사용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안 켜면 되는 게 아니라..." "왜?" "그냥 켜야 하는데 안 켜지면 문제잖아." "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한 게 아니라 대화를 끝내려는 끄덕임이다. 간호사 친구들 만나면 다르다고 한다. "오늘 중환자실에서 심정지 왔는데 5분 만에 소생시켰어!" "대박! 어떻게?" 직업의 드라마가 다르다. 내 드라마는 모니터 안에만 있다.야근의 의미 "오늘 야근해야 돼." "왜?" "배포 전이라서." "배포가 뭔데?" 또 시작이다. "앱스토어에 올리는 거." "그거 버튼 하나 누르면 되는 거 아냐?" "...그 전에 확인해야 하니까." "뭘 확인해?" "버그 있는지." "아직도 버그가 있어? 맨날 확인하는 거 아니었어?" 맞다. 맞는 말이다. 근데 설명할 수가 없다. 회귀 테스트, 스모크 테스트, 최종 검증. 이 단어들을 어떻게 설명하나.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는 거야." "그럼 한 시간이면 되는 거 아냐?" "...3시간?" "왜 그렇게 오래 걸려?" 케이스가 많아서, 디바이스별로 봐야 해서, 네트워크 환경 바꿔가면서 봐야 해서. 말이 길어진다. 여자친구는 한숨을 쉰다. "알았어. 조심히 들어와." 조심히 들어와. 야근하는 사람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밤길 조심하라는 말이다. 성취감의 차이 여자친구는 환자를 살린다. 나는 버그를 죽인다. 그녀는 "고맙습니다"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거 버그 맞아요?" 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퇴근하면 뿌듯하다고 한다. 나는 퇴근하면 '내일 또 버그 나오면 어쩌지' 생각한다. "오늘 환자분이 퇴원하셨어. 일주일 전만 해도 많이 아프셨는데." 눈이 반짝인다. 보람이 보인다. "나도 오늘 치명적 버그 잡았어." "...그래?" "앱 결제할 때 두 번 결제되는 버그였어. 사용자들 돈 두 번 빠질 뻔했어." 잠깐 침묵. "그럼 그거 원래 만든 사람이 잘못한 거네?" "...응." "근데 넌 뭘 한 거야?" "발견한 거지." 발견. 그게 내 일이다. 근데 왜 이렇게 작게 들릴까. 연봉 이야기 친구들 만나면 연봉 얘기가 나온다. 여자친구 간호사 친구들도 온다. "저는 3년 차인데 야간 포함하면 4800 정도 받아요." "오 괜찮네요." 내 차례. "저는 4년 차고 4200이요." "어? 개발자 아니었어요?" "QA요." "...뭐 하는 건데요?" 여자친구가 대신 설명한다. "버그 찾는 거래요." "아~ 개발자 밑에서 일하는 거?" 밑이라는 표현. 틀린 말은 아닌데 기분이 묘하다. "같이 일하는 거죠." "그래도 개발자가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뭐." 여자친구가 내 손을 잡는다. 위로의 손길이다. 근데 위로받고 싶지 않다. 설명하고 싶다. 내 일의 중요성을. 말이 안 나온다. 직업의 무게 택시 타면 기사님이 묻는다. "무슨 일 하세요?" "IT 회사 다녀요." "아~ 개발자시구나. 요즘 잘 나가죠?" "...네." 개발자라고 말한다. 정정하기 귀찮다. 여자친구 부모님 만났을 때도 그랬다. "따님 남자친구 뭐 하는 사람이에요?" "IT 회사 다녀요." "요즘 IT가 대세죠. 연봉도 좋고." 여자친구 어머니 표정이 밝다. "정확히는 QA 엔지니어예요." "...큐에이?" "품질 관리요." "아~ 그래요."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미묘한 변화다. 하지만 느껴진다. 여자친구가 나중에 말했다. "엄마가 개발자인 줄 아셨대." "그렇구나." "괜찮아. 뭐 하든 상관없어." 상관없다는 말. 위로 같지만 상처다. 이해받고 싶은 순간 배포 다음 날이었다. 새벽 3시까지 일했다. 아침에 출근했다. 모니터링한다. 크래시 리포트 확인한다. 0건. 가슴이 뛴다. 내가 잡은 버그들 덕분이다. 팀장님이 지나가면서 말한다. "어제 수고했어. 깔끔하게 배포됐네." 이 순간을 여자친구한테 말하고 싶었다. 저녁에 만났다. "어제 밤샘한 보람 있었어. 배포 완벽하게 됐어." "그래? 다행이다." "버그 하나도 안 나왔어." "원래 안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숨이 막힌다. 맞다. 원래 안 나와야 한다. 근데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설명하나. "내가 미리 다 잡았으니까 안 나온 거야." "그럼 잘한 거네." "응." 잘한 거네. 끝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간호사는 다르다. "오늘 응급 처치 완벽하게 해서 환자분 살렸어." "대단해!" 개발자도 다르다. "오늘 알고리즘 최적화해서 속도 30% 빨라졌어." "와 천재 아냐?" QA는? "버그 안 나왔어." "...원래 안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자동화 공부 요즘 자동화 공부한다. Selenium, Appium 독학 중이다. 여자친구한테 말했다. "나 요즘 자동화 공부해." "자동화? 뭐가?" "테스트 자동화. 내가 손으로 하던 걸 프로그램이 하게." "그럼 네 일을 없애는 거네?" 뜨끔. "그게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그럼 나중에 너 자리 없어지는 거 아냐?" 말문이 막힌다.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 배우면 도태된다. "배워야 살아남아." "힘들겠다." 힘들겠다는 말. 공감이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간호사는 면허가 있다. 개발자는 코드가 있다. QA는 뭐가 있나. 경력? 4년 차 경력이 과연 무기가 될까. 잠이 안 온다. 그래도 어제 여자친구가 물었다. "너 왜 그 일 해?" 3초 생각했다. "재밌어서." "뭐가 재밌어?" "버그 찾는 게." 진심이었다. 엣지 케이스 생각하는 거. 아무도 생각 못 한 시나리오 찾는 거. 크리티컬 버그 잡았을 때 그 쾌감. "이상한 사람이네." 이상한 사람. 인정한다. 일반 사용자들은 앱 쓰면서 버그 만나면 짜증 낸다. 나는 버그 보면 신난다. "어떻게 재현되지?" "어떤 조건에서 터지지?" 이게 내 직업병이고 특기다. 설명할 순 없어도 나는 안다. 내 일이 중요하다는 걸. 평행선 여자친구와 나는 평행선이다. 그녀는 사람을 살린다. 나는 서비스를 살린다. 그녀는 환자를 본다. 나는 버그를 본다. 그녀는 감사받는다. 나는 당연시된다. 하지만 둘 다 필요한 일이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말했다. "네가 하는 일 완벽히 이해는 못 하지만,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알아." 그거면 된다. 완벽한 이해는 바라지 않는다. 같은 업계 사람도 QA를 오해한다. 다만 인정.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된다. 마무리 오늘도 여자친구가 물을 것이다. "오늘 뭐 했어?" 나는 또 3초 멈출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일했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열심히 했다. 그거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일을 이해 못 해도 괜찮다. 나는 안다. 내 일의 가치를. 버그 없는 세상. 그게 내가 만드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아도 중요하다.설명 못 해도 계속한다. 이게 내 일이니까.